Q3. 도예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흙 만지고 노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때는 도예가가 될지 몰랐습니다. 목수인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럽게 목공일을 배우면서 초등학교 때는 도장을 파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는 가구 제작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목공을 전공하게 됐는데 우연한 기회에 도자기에 반해서 전공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물레 돌리는 모습이 너무 멋지더라고요. 어렸을 때 흙을 만지며 놀았던 행복했던 기억 덕분에 도예가로 입문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때가 1981년이었으니까 40년이 넘었습니다.
Q4. 도예가로서의 보람이 있다면?
1986년에 전국기능올림픽에서 은상을 수상했고 당진시 문화상품 전국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지난 4월 당진공예가협회가 주최하는 특별 기획전에 작품을 전시했었는데 제 작품만 판매가 되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일본, 중국 해외 전시회에서도 제 작품만 유일하게 판매가 되었는데, 제 작품을 좋아해 주고 인정해 줄 때 당연히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노력한 만큼,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왔을 때 가장 뿌듯합니다.
Q5.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주기 아까울 때도 있나요?
저는 ‘세상에 내 것은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을 만들어 드리면 그분들이 제 작품을 귀하게 대접을 해주니 그것으로 족합니다. 몇 십 년 전에 받은 제 작품을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말씀을 가끔 전해 들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만든 그릇이 좋은 주인을 만나서 귀하게 쓰이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Q6. 도예 활동을 하고 있는 자녀가 있나요?
4남매가 있는데 셋째 아들이 도예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지원해 줄 생각입니다. 막내딸은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데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도예가가 된다고 한다면 도와주고 싶습니다.
Q7. 도예가로서 힘든 점도 있을 텐데요.
수입 면에서 불규칙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든 면이 있습니다. 경기가 침체되면 다른 분야도 어렵겠지만, 저희가 가장 먼저 어려워지고, 회복이 늦게 되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시나 주문, 체험 의뢰 등이 많이 줄었다가 요즘에 조금씩 회복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흙과 함께한 세월 동안 늘 행복했습니다.
Q8. 마지막으로 어떤 도예가로 남고 싶으신지요.
저는 공방을 늘 개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 공방을 편안하게 생각해서 자주 찾아오고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도예가, 공방 아저씨로 남고 싶습니다.
5월 21일부터 시작한 마을기반 진로체험학교 <도예 수업>은 총 6회로, 6월 25일에 끝을 맺는다. 수업에 참여한 17명의 학생들이 자신만의 꿈을 빚어낼 수 있도록, 열정을 다하는 공방 아저씨 문영호 도예가. 그의 공방에서 오늘은 또 어떤 꿈들이 현실이 될까?